2008. 5. 17. 21:56ㆍ영화 투덜거리기
뮌헨 (Munich)
감 독 : 스티븐 스필버그
주 연 : 에릭 바나
장 르 : 드라마 / 스릴러
제작국가 : 미국
제작년도 : 2005년
1972년 뮌헨 올림픽.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검은 9월단'이라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살해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반응하게 된 이스라엘은 비밀 공작을 준비하는데 '모사드'에서 복수를 할 요원들을 차출하고 하나씩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리더인 애브너(에릭 바나)를 중심으로 폭발물 전문가 로베르(마티유 카소비츠). 문서위조 담당 한스(한스 지쉴러) . 뒷처럼 담당 칼(시어런 힌즈). 도주 담당 스티브(대니엘 크레이그)로 팀이 구성이 되고 이스라엘 정부의 도움을 받지만 겉으로 보여지기에는 조국애가 강한 사람들이 일을 벌인다는 포장이 씌여졌다.
처음에 이 영화가 만들때에는 유대인인 감독에 의해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내용을 보여질것 같았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검은 9월단의 테로보다는 그 이후에 벌어진 이스라엘이 보복을 하면서 벌어지는 테러라는 내용을 펼쳐보이면서 복수라는 아니 테러를 당한 상대방이 다시 그 보복을 하려는 것의 정당성에 대해서 묻는다. 그렇기에 유대인을 옹호하기보다는 평화에 대해서 말하는 듯 하다. 그 속에는 또한 가족이 등장한다. 같은 유대인들이 테러로 비참하게 죽은 사실에 처음 팔레스타인에게 보복을 할때 그들은 축하를 하며 보복하는것에 그렇게 큰 회의를 느끼며 일을 수행하진 않았다. 하지만 점점 하나씩하나씩 제거해 나가면서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보복이 최선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가족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집이라고 표현되는 가정은 국가가 이뤄질 수 있는 가장 작은 집단이며 큰 집단이기도 한 것이다. 보복을 통해 얻는 희열보다는 그저 개인으로써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써 평온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하는 듯 하다.
유대인 신혼부부 옆방에서 머무르는 제거 대상 한명은 자신이 당할지도 모르는 유대인 옆방에서 항상 투숙을 하는 것이다. 암살되면 소용없겠지만 적어도 폭발물로는 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소용없이 당했지만... 폭발물이 터져 옆방까지 피해를 보게 된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느꼈을 것이다. 처음의 그 보복에 대한 시원함보다는 이제는 주변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기에 더구나 신혼부부 이제 갓 결혼한 가족을 이뤄가야 할 사람들에게 피해가 갔으니 테러리스트끼리의 보복이 아닌 일반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피해장면이 아니더라도 정보를 받는 어느 대가족을 보면서도 가족이 가지고 있는 다른 이면을 말하면서 애브너가 새로운 가족탄생을 맞이하면서 일을 중도에 그만두고 미국땅에서 유대교를 믿으며 자기 방식대로 일방적인 애국주의가 아닌 가족애를 거절하고 생활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애브너는 보복을 하면서 점점 자신들에게도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보복을 하기위해 기다리면서 주고받던 옷장에서 잔다는 그말의 행동을 이제는 자신이 하고 있으며 편한 침대를 찢으며 혹시 설치되어있을지 모를 폭발물을 찾으며 밤을 새우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일들이 거듭되면서 자신들이 노출되어 동료들이 죽기도 하고 보복을 하면서 제거대상을 해결하지만 이내 새로운 존재들이 그 위치를 차지하면서 보복에 대한 무모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는 피로써 폭력은 폭력으로 부딪혀 해결하려하지만 그 결과는 다시 피로써 폭력으로써 그들에게 돌아올 뿐이것이다.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는 더욱 더 피폐해지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가정에 돌아와 아내와 섹스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떨치지 못한채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평화를 위한 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새로운 대안이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양보를 하며 타협을 하기도 하며 함께 인간 개개인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기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다행인건 유대인 시각이 아닌 인간적으로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마음에 든다. 후반부쯤에 다른 조직과 부딪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시점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바라는 것이 똑같다는 것을 공평한 시선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바라본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좀 더 팔레스타인들이 원하는 것을 아니면 직접적인 원인제공자로만 비춰지고 사라지기 보다는 그 이유를 좀 더 이야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언제나 아랍인들이 테러범행자들이며 서양인들은 그 테러에 대한 응징을 한다는 시선으로 볼수가 있으니 잠시 들어냈던 아랍인의 소망이 너무나 짧게 여겨졌다. 어찌보면 서양인들은 아랍인들 테러유발자들인데...
그런 것을 떠나서 영화로 보자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 말고도 영화로써 장르적 느낌을 갖기에도 매력이 넘친다. 스릴러로써 어느 가정집에 있는 제거대상에게 폭발물을 설치할때 긴장감 유발과 아슬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그런 쾌감도 느낄수 있다. 그런 장면들이 몇몇 등장하기에 긴 러닝타임임에도 지루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어디까지 영화로써 말이다. 생각해보면 영화는 평화를 말하는데 보고나서도 그러한 메시지를 뜻하고 있는것도 알고 있는데도 영화가 진행될때는 스릴러로써 폭발물이 터지는 상황에서 딸이 아닌 남자가 당하는 것에 안도감과 짜릿함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입으로 쉽게 뱉어내는 평화라는 말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희열을 더 원하는 것이 테러를 평화수단으로 감행하는 사람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세상엔 다양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말하기 쉬운 이해라는 단어보다는 보복을 통해 자신들이 얻고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취하려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개인보다는 월등한 힘을 가진 조직이기에 쉽게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영화. 바로 뮌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