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0. 09:27ㆍ수다 떨기
살아있는 시체들이 좀비(zombie)로 명명되었다.
이제는 공포 캐릭터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들인데 부두교에서 죽은자들을 주술이나 여러 방법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세상에 출현시키고 조종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좀비들은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 세상에 있었던 것처럼 땅을 누빈다. 그들이 땅을 밟게되는 특별한 이유는 여느 공포영화속에서 보여진 것처럼 없다. 이미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좀비영화를 자리잡게 만든 감독은 조지 A. 로메로이다.
물론 그의 첫번째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는 죽은 자들에게 좀비라는 단어를 부여하진 않았다. 후에 평론가나 사람들에게 걸작 평가를 받게되면서 새로운 좀비 영화의 효시라고 불리우는데 그 이전에도 수많은 영화들에서 좀비는 등장했었다. 하지만 좀비라는 것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영화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면서 공포 캐릭터 좀비를 확실하게 굳혀주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아버지 묘를 찾은 조니와 바바라는 좀비에게 습격을 당한다. 다행히 바바라는 그곳을 빠져나와 외딴 집에 머무르게 된다. 때마침 벤이라는 남자도 좀비들을 피해 그곳에 들어오게 되고 그들로부터 안전한 밤을 보내기 위해 문과 창문을 틀어막고 사태를 지켜본다. 젊은 연인과 딸 아이가 아픈 부부가 있었다. 라디오를 듣고 티비를 보면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살펴보며 상황에 맞게 행동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좀비들의 거침없는 공격이었고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홀로 남게 된 벤은 아찔한 밤을 보내고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고 좀비들을 죽이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지만 좀비처럼 죽게 된다.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 / 1978)
좀비들은 세상을 누비고 있었고 사람들은 당황해 우왕좌왕할뿐이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마음뿐이다. 군인들과 사람들이 사태를 수습하며 좀비들을 죽여나가지만 끝이 보이지 않기에 스테판, 피터, 로저, 프란신은 헬기를 타고 북쪽을 향한다. 기나긴 여정을 하던 중 쇼핑몰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물자를 얻고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느릿느릿 행동하고 상황판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좀비들을 상대로 계획을 세우며 쇼핑몰을 사수하지만 뜻밖의 상대 약탈자들이 나타나고 혼란에 빠진다. 두명은 죽음을 보게 되었지만 두명은 헬기를 타고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그 곳을 빠져나온다.
시체들의 낮 (Day Of the Dead / 1985)
좀비들이 가득한 땅을 벗어나 지하에서 살고 있는 몇몇의 군인과 의사들 그리고 기술자들이 있다. 배고픔으로 인간을 뜯어먹기 보다는 뇌에서 명령하는 식욕을 충족시키라는 본능에 움직이는 좀비를 데려다가 실험을 하는데 마치 애완동물을 길들이는 것처럼 통제를 하고 성과를 얻는다. 하지만 땅 위의 좀비들보다는 땅 속에 있는 그들간의 대립이 심해져 상황은 엉망으로 변하고 군인들은 좀비들의 먹이가 된다. 다행히 박사와 기술자들은 헬기를 타고 한적한 해변으로 탈출한다.
랜드 오브 데드 (Land Of The Dead / 2005)
좀비의 접근을 차단하고 만들어진 커다란 건물속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 주변은 가난한 이들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 주인인 카우프만은 군대를 조직하고 그들을 이용해 다른 도시에 있는 물품들을 얻어낸다. 물품을 얻어내면서 좀비들을 다시 죽이는데 단순한 행동과 식욕본능에 충실했던 좀비들이 진화하면서 사람들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들의 리더격인 빅 대디는 좀비들을 이끌고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도시로 처들어와 먹이를 먹게 된다. 많은 피를 보게 되었지만 좀비 집단과 라일리 일행은 충돌하지 않고 서로 가고 싶은 길을 향해 떠난다.
좀비가 출현하게 된 배경은 1편에서 라디오와 TV를 통해 전달해 준다. 인공위성 폭발에 의한 방사능 노출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 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또한 좀비들의 잔인한 행동을 집에 갇힌 사람들이 겪어야 할 상황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설명으로 해결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좀비가 나타나게 되는 확실한 대답이 되질 않는다. 후편으로 이어지면서 그 이유는 언급조차 되질 않는다. 이미 그 세상에는 좀비들이 득실거리고 있으며 사람들을 뜯어먹는 존재로 활약중인 모습일뿐이다.
1편의 좀비들은 흑백화면에 가려져 특수한 분장을 했다는 모습이 좀처럼 보여질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을 뜯어먹기보다는 바로 죽은 사람을 먹고 무섭도록 잔인한 장면은 보이질 않는다. 그들의 모습은 차림새가 누추하고 얼굴 표정이 어둡고 어눌한 걸음걸이를 보여준다. 몸은 움직이지만 이성적 판단이 어렵고 살아있는 인간에게 단순한 공포를 던져준다. 초창기의 좀비이다 보니 그들을 피하는 사람들이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주고 공격성향이 강하게 나타나진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는 시도를 하게되고 주변의 좀비들과 함께 뭉치면서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사람에게 접근하면서 돌과 도구를 이용하지만 원시적인 모습으로 휘두르고 던지기에 도구를 통해 상황을 호전시키는 역할을 하진 못한다. 살아있는 시체를 처리할 방법은 그들을 태우거나 머리에 충격을 가해 뇌를 없애는 것 뿐이다.
2편의 좀비들은 더욱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졌고 컬러로 좀비를 그려내면서 과장된 모습으로 변했다. 여전히 움직임은 둔하지만 그들에게 물리면 살점이 적나라하게 뜯겨져야 하고 머리와 내장은 순식간에 그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1편에서 간장한 청년이 거뜬하게 좀비를 때려눕혔던 걸 생각한다면 2편에서는 좀비의 힘이 세졌다. 때론 살짝 부딪혀도 쓰러지는 좀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섭게 달려드는 태도를 취한다. 살아있는 이들이 움직이는 무대가 쇼핑몰이다 보니 좀비들도 쇼핑몰에서 걸음을 취한다. 죽기전에 익숙한 행동이 죽어서도 익숙한 행동의 결과 나나타 인간들이 나타나면 먹잇감으로 생각해 접근하게 된다. 좀비들이 홀로 행동하는 것 보다는 단체로 움직이면서 상당한 공포감을 보여주는데 그들에게 둘러쌓인 사람은 아주 짧은 시간에 사지가 절단되며 그들의 입을 채워주게 된다. 1편처럼 좀비에게 상처를 입었떤 사람들은 좀비가 된다.
3편의 좀비도 여전히 어눌한 걸음걸이와 단체행동을 통해 무서움을 전달한다. 사람을 뜯어먹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좀비를 연구하는데 길들여지는 좀비가 등장하고 반복학습을 통해 상황을 인지하게 된다. 그들의 움직임이 죽기전의 행동이었던 것이었는데 3편에서는 더욱 더 구체적인 모습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보상을 통한 길들여짐이기에 사람들과 함꼐 할 수는 없다. 또한 보상이 인간의 고기이기에 좀비의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잔인한 살육현장을 만들어 낸다.
4편의 좀비들은 좀 더 노련해졌다. 3편에서 감정노출을 보여줬고 반복학습을 통해 얻게 된 상황인지도가 더해져 빅 대디라는 좀비들의 리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죽어가는 동료 좀비들을 보며 울분을 토해내고 학살을 벌인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어기적거리는 걸음을 지속하며 심지어는 강을 건너기까지도 한다. 단어들 쓰진 않지만 단순한 소리로 의사소통을 이뤄낸 좀비집단은 죽기전에 익숙했던 도구는 물론이고 새로운 물건에 대한 습득까지 얻어내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을 할 수있게 된다. 각각의 좀비들마다 특성이 있기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뜯어먹는다.
좀비의 행동이 긴 시간을 걸쳐 변화하듯 시체 시리즈는 제작된 시대에 맞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평론가들의 재평가로 걸작에 들게 된 1편에서는 개인적으로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을 보게 되었다. 갇힌 공간에서 인간들의 심리적 변화를 보여주며 희생을 감수하고 한 사람이 남게되었지만 그 사람은 좀비 소탕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좀비로 오인되어 머리에 총을 맞고 죽는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간 그를 보여주면서 엔딩씬의 스틸 사진은 좀비가 만들어낸 무서움보다 인간들이 행하는 결과를 통해 더 섬뜩한 공포를 던져주었다. 2편의 무대가 쇼핑몰이다보니 자연스레 소비문화와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모습이 보인다. 죽어서도 몸에 익숙했던 쇼핑몰 드나들기를 시도하는 좀비들과 혼란속에 버려진 쇼핑몰에서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냥 행색을 부리며 좀 더 악랄해보이는 약탈자들의 등장으로 인간들끼리 싸우다가 소비문화의 희생양처럼 보이는 좀비들로부터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그 전에는 좀비들을 사냥하는 모습에서 마치 게임을 즐기 듯 그들에게 총격을 가하는데 이제는 그 상황이 익숙한 듯 어려워하지 않고 즐길 뿐이다. 3편에서 좀비들은 인간들의 대립의 주변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좀비들의 활약이 줄어들었지만 그 자리를 살아있는 인간들이 대립이 자리잡고 있다. 함께 의견을 뭉쳐서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야함에도 자신만이 잘났다며 서로를 무시하는데 그것이 화를 자초하고 결국 좀비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이다. 그 희생을 치루는 것이 군인들이다. 4편은 좀 더 구첵으로 들어난다. 가진자와 못 가진자들의 대립으로 거듭닌다. 좀비들이 향하는 곳은 높은 빌딩속이며 바깥세상에 관심이 없던 부유한 사람들은 관심밖의 대상에게 짓밟히게 된다.
시체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인간의 욕심은 더해지고 살아있는 시체를 보며 공포감도 느끼지만 좀비를 데리고 유희를 즐기며 게임을 하듯 총을 난사하면서 살아있는 시체들만큼이나 폭력적이고 잔인한 행동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지만 살아있는 시체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미 세상은 살아있는 시체들로 가득하다는 것처럼 보여진다. 시체 시리즈가 만들어질 당시의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을 안다면 보는 재미가 더해지겠지만 그것을 모른다 하더라도 풍자하는 대상은 언제나 인간 그 자체이기에 그런 모습만 본다해도 큰 상관은 없어 보인다.
공포감은 그렇게 작용하는 듯 하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습격으로 무자비하게 뜯겨지는 살점과 내장들이 아니라 좀비들로부터 둘러쌓여 어디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과 벗어난다 해도 상황이 좋아졌을거라는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 남은 인간들끼리 티격태격 싸우고 서로를 불신하며 자기 갈길만 찾으려 하다가 일행 중에서 살아있는 시체로 변해 자신이 타격을 입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하는 갈등에 놓이는 상황에 접어들면서 더 극적인 상태로 도달하는 것 같다. 물론 이미 그런 설정들은 익숙해질데로 익숙해졌기에 주인공의 심적으로나 외적으로 표출되는 갈등들이 달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시체로부터 당해야 할 상황이기에 다른 것들과 제대로 조화되면서 보는 공포감보다는 심리적 공포감으로 다가오게 해준다.
여타의 공포 캐릭터보다는 어눌하고 엉거주춤한 외양을 갖추고 살아있는 시체 답게 얼굴은 썩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무서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좀비들이 단체로 출현한다면 그 상황은 겉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한다. 방사능 노출이든 지옥에 자리가 없어 죽은 자가 되살아 왔든 이미 좀비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활보하고 있다. 원인이 불분명하여 결과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모르는 상황이고 머리에 충격을 가하여 뇌를 손상입히거나 불에 태우면 살아있는 시체가 더 이상 살지 못하지만 그 모든 살아있는 시체를 해결할 수 없으며 쉽게 전염되는 병처럼 그들에게 상처입게 되면 똑같은 신세가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끝을 알 수 없는 모습이다. 시체 시리즈의 후반부에서는 상황이 호전되는 모습이 거의 없다. 몇몇의 주인공들이 다른 곳으로 탈출을 행하지만 그곳이 안전할지 살아있는 시체들로부터 습격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좀비들이 가득한 곳이기에 쉽게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살아있는 인간이 살아있는 시체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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