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2008. 5. 18. 21:05영화 투덜거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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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 (Babel)

감      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주      연 : 브래드 피트 / 아드리아나 바라자 / 키쿠치 린코
장      르 : 드라마  
제작국가 : 미국  
제작년도 : 2006년


모로코의 황량한 사막에서 자칼로부터 양떼를 보호하기위해 구입한 장총이 유세프와 아흐메드 형제의 손에 있게되면서 그 총의 위력을 확인하고자 지나가는 관광버스를 향한다. 이 상황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감독의 전작들과 비슷한 구성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로코. 관광버스안에는 미국인 부부 라차드와 수잔이 있었다. 아기가 죽은 슬픔을 잊기위해 여행을 온 것이지만 수잔이 총에 맞으면서 희망을 찾으려 왔던 그 곳에서 절망을 얻게 된다. 아랍세계를 여행중인 미국인들이기에 그 총이 테러집단이 행한 것이라 여기며 더욱 더 불안해 한다. 다행히 친절한 현지 가이드의 도움으로 외진 마음에서 수잔의 치료를 돕는다. 하지만 그 도움을 받기에 그들은 아랍인에 대해 고정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모습을 취하게 된다. 리차드는 미국 대사관에 연락해 앰블란스가 오길 바랬지만 상황은 국제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시간은 그저 흐르기만 한다. 함께 온 미국인들은 마을의 아랍인들을 보며 두려워 하기 시작하고 끝내 리차드와 수잔을 남긴채 떠나간다.

미국. 리차드와 수잔의 두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보모 아멜리아가 있는데 그녀는 멕시코에 있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 아이들로부터 떠난 자리를 메워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결국 두 아이를 데리고 멕시코로 향한다. 낯선 멕시코에서 두 아이는 현지의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색다른 결혼식 풍경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축제의 시간을 보내고 아멜리아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멕시코로 갈때와는 달리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분위기는 삼엄해지고 미국 땅에 기회를 찾아 간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그 사막에 놓이게 된다.

일본. 모로코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쓰인 총은 원래 치에코의 아버지의 것이었다. 모로코에서 현지인의 도움으로 사냥을 했었고 고맙다는 표시로 그 장총을 주었던 것이다. 청각장애자인 치에코는 어머니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상태이고 어머니처럼 자신에게 관심을 많이 주지 않는 아버지와 원활한 관계가 아니다. 그저 치에코는 친구들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몸을 함부로 내두르려고 한다.

바벨에 대해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 잘 모른다. 언어가 달라지면서 소통의 문제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가 그들에게 주는 소통의 문제가 별로 없었다. 심지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그들 - 총에 맞은 수잔을 돕기위해 현지인 가이드는 곁에서 리차드에게 도움을 준다. 제대로 일이 바로 잡히지 않아 욕을 먹어도 싫은 내색없이 꿋꿋히 힘을 보테주고 헬기에 타면서 리차드가 주는 돈을 받지도 않는다. 무엇을 바라고 그들을 대해준 그의 마음이 아니었기에 그저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랬을 뿐이었다. 낯선 멕시코에 온 두 어린 미국인은 현지 아이들과 대화가 제대로 통하지 않지만 웃으면서 함께 논다. 닭들을 쫓고 결혼식을 바라보며 소통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서로 잘 어울려 보이는 시간을 보낼 뿐이다. 그리고 일본의 치에코는 말을 못해 수화나 종이에 적어 상대방에게 전달하는데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한 후 충격에 쌓이고 정상인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탐탁치 않은 시선에 몸을 버리려 하면서 어느 형사를 만나는데 그 형사는 다른 사람들처럼 치에코를 이상하게 바라보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를 따뜻하게 해준다.

소통의 문제는 같은 언어를 쓰는 경우에 발생되었다. 장총의 위력을 확인하고자 장난삼아 쏜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 다다르면서 모로코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유세프와 아흐메드는 도망을 치지만 결국 경찰들이 쏜 총알을 받아야 한다. 그러던 중 아흐메드가 그 총알에 맞게 되고 죽게 된다. 유세프는 그 상황을 만든 장총을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버린다. 무턱대고 자신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며 자신들의 사정을 들어줄 생각없이 총알을 날리면서 상황은 악화되는 것이었다. 그 총에 맞은 수잔은 아랍인의 도움을 받고 있고 리차드는 여러 방법을 강구하지만 그들과 함께 왔던 미국인 관광객들은 그곳을 벗어나려한다. 리차드의 욕심이기도 하지만 관광객들은 아랍인들이 득실거리는 그 삭막한 곳에서 도망가고 싶을 뿐이다. 여행을 왔지만 그들 세계를 이해하기보다는 그 상황에 놓이면서 머리속에 박혀있는 고정관념들이 발동해 같은 미국인이 다쳤지만 자신의 목숨을 먼저 부지하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미국 국경의 사막에 놓였던 아멜리아는 두 아이의 생사를 궁금해 하지만 미국인은 당신과는 관련이 없다며 이곳을 떠나라고 말한다. 나무그늘밑에 아이를 남기고 그들을 구하려고 지나가는 차를 찾으려 햇볕쨍쨍한 사막에서 발버둥 친 아멜리아이지만 그녀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해주지도 않고 그녀의 발언도 묵살되면서 강제추방당하는 신세가 된다. 일본의 치에코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정상인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에 맞서 팬티를 벗고 당황하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무시하는 그들에게 자신만의 해소방법을 찾다가 좋은 감정이 생긴 남자를 알게되면서 치에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같은 청각장애자인 친구에게 그를 뺏긴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아무런 연관없이 단절된 느낌처럼 다가오는 것은 영화 구성뿐만이 아니라 각 이야기들 속에 주인공들이 느끼는 고립감에서 찾아온다. 겉으로 들어나는 것은 장총 한자루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다른 곳에 있는 그들에게 연관성있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 총이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모습은 모로코에서 뿐이고 미국 혹은 멕시코나 일본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져있다. 아랍세계와 미국, 미국과 멕시코의 국가적인 대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언어의 불완전한 소통방식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의 내면속에 자리잡고 있는 각기 다른 모습의 소통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고 문제점들은 풀지 못한채 극한 모습에 도달한다. 여러 이야기속에 희망이 살아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모습만 추구하다보면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되내이고 싶지않은 일들이었지만 그것들을 간직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는 절망의 끝을 보여주었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제대로 서로를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놓여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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